하루 종일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기사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터이자 동료이며, 때로는 감정을 나누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일반 운전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동차를 대하는 택시기사의 시선에는 삶의 철학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택시기사들이 자동차와 맺는 관계와 감정 이입의 방식, 그들이 말하는 ‘차와의 동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곧 삶의 일부
택시기사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자동차 안에서 보냅니다. 일반 직장인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시간보다 더 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자동차는 그들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활공간이며, 때론 정서적 안정 공간입니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택시를 몰아온 박 모 기사님은 “운전석은 내 사무실이자 안식처예요.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카페가 있고, 누군가는 사무실이 있지만, 저는 차 안이 그 모든 걸 대신해요”라고 말합니다. 차량 내부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미고, 선호하는 음악을 틀며, 개인적인 루틴을 유지하는 모습은 차량을 '제2의 집'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차를 '말을 안 해도 서로를 아는 존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평소와 다른 엔진 소리나 진동이 느껴지면 "우리 차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라고 표현하며, 정비소를 찾습니다. 단순히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것을 넘어서, 차의 상태를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결국 택시기사에게 자동차는 생계 수단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며, 장시간 함께하는 만큼 감정적 유대도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차량 관리, 단순한 책임이 아닌 애정의 표현
일반 운전자에게는 귀찮을 수 있는 차량 점검과 세차도 택시기사에게는 일상의 의례입니다. 택시 차량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승객을 태우며, 외부 청결은 물론 내부 위생도 신경 써야 합니다. 하지만 이 관리 행위는 단순한 청결 유지를 넘어서, 차에 대한 감정적 배려이기도 합니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한 택시기사는 “차를 닦아줄 때마다 '오늘도 수고 많았다'는 말을 속으로 한다”며, “차가 고장 없이 버텨주니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동차를 생명체처럼 여기며, 감사와 책임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기사들은 차량에 이름을 붙여 부르거나, 대시보드 위에 가족 사진이나 장식품을 두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는 차량을 단지 기계로 보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연결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기적인 오일 교환, 브레이크 점검, 타이어 상태 체크 등은 업무 효율을 위한 기본이지만, 그것을 넘어 '차를 아끼는 마음'의 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차량이 오래될수록 ‘정든 차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감정도 강해져, 차량을 바꿀 때마저도 ‘이별’의 감정을 표현하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차량 관리는 단순한 유지 행위가 아니라, 택시기사의 애정 표현 방식이며, 감정이입의 구체적인 실천이기도 합니다.
승객과 차 사이에서 형성되는 감정의 삼각관계
택시기사의 자동차 감정이입은 승객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납니다. 택시 안은 기사-차량-승객이 함께 머무는 폐쇄된 공간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의 관계가 형성되고 해체되는 장소입니다. 이 안에서 자동차는 때로는 ‘중재자’, 때로는 ‘보호자’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감정이 격한 승객이 탈 경우, 일부 기사들은 “내 차 안에서는 예의를 지켜주세요”라고 말하며, 차량을 일종의 감정적 경계선으로 설정합니다. 이 말은 단지 차량 보호의 의미가 아니라, 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표현입니다.
또한 승객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차량 내 분위기나 음악을 통해 ‘이 공간은 조용한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즉, 차량은 택시기사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셈입니다.
감정적인 하루를 보낸 기사들이 퇴근 후 차를 세우고 “오늘도 잘 견뎠다”고 차량을 쓰다듬거나, 차량 내 조명을 끄며 “잘 자라”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택시기사의 자동차에 대한 감정적 애착이 매우 깊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자동차는 이들에게 외로운 도시 속 ‘대화 없는 동료’이자, 감정을 받아주는 침묵의 친구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매일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더욱 견고해집니다.
결론: 감정을 나누는 택시기사와 자동차의 동행
택시기사에게 자동차는 단지 일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끝내는 동료이자, 때로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존재입니다. 차량과의 감정적 관계는 운전의 피로를 줄여주고, 일상에 정서적 균형을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깊이 있는 감정 이입은 우리 모두가 자동차를 단순한 기계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시사점을 남깁니다.